[특별기고]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연록은 싱그러운 봄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실로 천지가 빚어낸 경이로운 향연이다. 이 무렵에 햇차를 만든다. 하늘과 땅의 기운, 바람과 햇살이 키워낸 차는 따스한 온기와 맑은 기운으로 사람의 심신을 감싸준다. 그러므로 차를 즐기며 위안받았던 이들은 차나무를 가수(嘉樹·아름다운 나무)나 영초(靈草)라 칭송했다.

차를 처음 실생활에 활용해 문화를 일군 것은 중국의 파촉(巴蜀) 지역이다. 여기에서 발원한 차 문화는 북방으로 퍼졌고, 한국과 일본에도 소개돼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차 문화를 꽃피웠다. 어디 그뿐이랴. 중국의 차 문화는 유럽에도 알려져 홍차라는 새로운 차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문화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차의 힘은 무엇일까. 바로 차가 자연의 온화한 기운을 품고 있기 때문일 테다. 이런 차의 덕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곧 차를 만드는 공정이다. 이를 제다(製茶)라고 한다. 생잎이 품고 있는 보호색, 즉 독성을 불로 제압해 중화하는 공정으로 차의 온기와 풍성한 향기, 맛, 기운을 더욱더 드러낸다.

따라서 차를 만드는 사람은 인지 능력, 차에 대한 이해, 순리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결국 제다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완품(完品)의 차는 자연과 인간의 인지능력, 불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옛사람들이 차를 만드는 공정을 중시하고, 차를 끓이는 조건을 상세하게 서술했던 연유가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한마디로 한 잔의 차에는 천지의 기운과 사람들의 노동력, 지혜,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차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맛의 세계는 문인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들은 차가 자신의 문학적인 이상을 길러주며, 수신(修身)뿐만 아니라 벗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데 알맞은 음료라 여겼다. 따라서 문인들은 더욱더 차를 끓이는 일에 관심을 뒀다. 차는 독서와 비견되는 선비의 일상이었으니 차를 즐기는 일에는 세련미를 더하고 문기(文氣)까지 덧붙여졌다. 어디 옛날뿐이랴. 지금도 차를 잘 즐기려면 첫째 좋은 차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며, 둘째 좋은 물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여말선초의 학자이자 차인(茶人)이었던 이행(李行)은 “충주의 달천수(達川水)를 최고로 쳤고, 금강산에서 흘러내리는 우중수(牛重水)가 두 번째이며,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가 세 번째 좋은 물”이라고 꼽았다.

그뿐 아니라 숯불의 강약을 조절해 물을 끓이는 능력이나 좋은 찻잔을 고르는 눈도 갖춰야 한다.청자 찻잔의 투명한 맑음은 차의 근원적인 맛과 격조를 담아낸다. 시대의 이상과 지혜를 품은 청자 찻그릇의 유연한 곡선미는 한국의 산하를 닮았기에 익숙하며 화려한 듯하지만 넘치지 않는다.

유백색의 백자 찻잔도 현대인의 정서에 어울림 직한 찻그릇이다. 경직되지 않은 유백의 따뜻함은 냉랭한 도회의 삭막함을 희석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황금빛을 띤 연둣빛 차색을 품은 그릇이라면 곁에 두고 차를 즐기기에 좋을 것이다.

차의 덕을 칭송하고, 차 마시는 즐거움을 노래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특히 당나라의 시인 노동(盧仝)의 ‘칠완다가(七碗茶歌)’는 차를 마신 후에 일어나는 심신의 변화를 가장 잘 대변한 시다. 그는 “첫째 잔은 입술과 목젖을 적시고, 둘째 잔은 고민을 없애주며, 셋째 잔은 삭막해진 마음을 더듬어 오천 권의 문자를 떠오르게 한다”고 했다.

이어 “넷째 잔을 마시니 살짝 땀이 나는 듯 일상의 미덥지 않았던 일이 땀구멍 사이로 사라지는 듯하다”고 했으며,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겨드랑이 사이로 맑은 바람이 인다”고 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차를 마셔야 하는지를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결국 차란 번뇌와 삭막한 마음, 그리고 불안감을 해소하기에 가장 좋은 음료라는 주장일 테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져 기억력이나 감성까지도 되살아나 영원히 죽지 않는 신선이 된다니….

따라서 현대인들에게 차만큼 좋은 ‘보약’은 없다. 아무리 쪼들리는 일상이라도 잠시나마 짬을 내서 맑은 차를 한잔 마셔보라.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질 테다. 일차일소(一茶一少)다!

 
해당 기고는 강남라이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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