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라온영어도서관 윤채연 사서
#Let the magic begin!
‘Let the magic begin!’은 도서관 개관 후 첫 번째 북 큐레이션 주제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도서를 전시하고 있다. 마법이 시작되어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가고, 웬디가 팅커벨과 함께 밤하늘을 날고, 엘사가 얼음궁전을 지으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듯이, 일원라온영어도서관의 시작 또한 마법처럼 이용자들의 일상 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전시명이다. 자, 그럼 영어도서관의 마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회색 콘크리트 공간에서 영어책 놀이터가 되기까지
일원라온영어도서관은 올해 3월 개관한 강남구립도서관의 막내이자 첫 구립 영어도서관이다. 나는 두 달 전쯤에서야 개관준비팀에 합류하여 그 이전의 모습들은 전해들은 것이 전부지만, 처음 아무것도 없던 이 공간에 발을 디뎠을 때는 영어도서관이라는 특성까지 더해져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한 새하얀 도화지…아니, 묵직한 회색 콘크리트 공간이었다고 한다.
도서관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만 동화 속 주인공과 다른 점은, 엘사처럼 발을 한번 구르면 멋진 궁전이 스스로 지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회색 콘크리트 공간 위에 연필로 공간 구획을 나누고, 전기 도면을 그리고, 인테리어를 한다. 어디에 어떤 서가를 배치할지, 어떻게 공간을 구성해야 이용자들이 가장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없이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먼지 가루를 마시며 일궈내는 것이다. 그 길고 긴 싸움이 끝나 도서관 공간이 마련되면, 이제는 도서관 안을 채우는 일들의 연속이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사서들은
강남구의 첫 영어도서관 개관 소식에 설레는 마음인지, 도서관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어갈 무렵부터 개관 전까지 많은 분들이 호기심에 도서관을 찾아와서 둘러보고, 또 창문 밖에서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웃거리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이용자가 없는 도서관에서 사서들은 무엇을 하느라 그리 바빴던 걸까?
도서관이 완공된 후 새 도서관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사서들은 도서관리 시스템과 전산장비를 점검하고,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문화 프로그램과 전시를 기획하고, 공간이 비어 보이지 않도록 꾸미고, 꾸미고, 또 꾸민다. 또한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방문했을 때 책을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사인물을 제작하고, 안내문을 여기저기에 붙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구입한 책, 개관장서가 도서관에 배송되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육체노동이다. 전원 목장갑 장착! 수 천권, 수 만권의 책이 모두 도착했는지, 파본은 없는지 검수하고 나면 책의 청구기호가 모두 알맞게 부여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오류를 수정해야 하는데, 청구기호가 올바르게 부여되어야만 비슷한 책 끼리 모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손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구기호 수정 작업까지 마무리 되면 이제 책의 고유한 주소인 청구기호에 맞춰 정배열을 하는데 이 작업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도서관에서 놀던 어린 시절엔 ‘사서’하면 생각나는 모습은 뾰족한 안경과 긴 스커트였지만, 사서가 된 내가 생각하는 ‘사서’의 진정한 아이템은 ‘목장갑’이라고 손꼽아본다.
“이렇게 하면 분실되기 쉽지 않을까요?”
“영어로만 사인물이 제작되면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이 공간의 이용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팝업북 대출이 가능하면 책이 금방 훼손되지 않을까요?”
함께 일하는 사서들은 어느 때라도 의견이 생기면 외친다. 도서관 개관 경험이 있는 사서도, 모든 것이 처음인 사서도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의견과 의문점을 공유하면 차마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도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간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그리고 이용자로 방문하면서 습득했던 모든 경험과 지식이 총출동된다. 하지만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해도, 도서관 개관 후에 운영을 하면 분명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고 계속해서 해결해나갈 일이 생길 것이다.
#Ask your librarian! 사서에게 물어 보세요
“저기요…”
유아자료실에서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던 학부모님이 데스크로 다가와 말문을 연 순간이었다.
잔뜩 긴장했다. 무언가 도서관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신 걸까?
“저기요… 여기 진짜 좋아요!”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보상받는 듯하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을 만족스럽게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데스크에 와서 표현해 주신 것이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 문을 연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처럼 따뜻한 하루하루들로 가득 찬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꼭 데스크에서 질문을 할 때 항상 ‘그런데…’로 말문을 연다.
“책을 찾고 싶은데, 스펠링을 모르겠어요.”
“어떤 책을 찾고 있어요?”
“더그맨? 덕맨?”
“아 도그맨!! 잠시 여기로 따라올래요?”
그렇게 ‘Dog man’ 세 권이 꽂힌 레벨 도서 서가에 어린이를 데려갔다. 그런데 실망하는 눈치다.
“그런데… 이거 말고 더 없어요?”
그때 챕터북 서가에 ‘Dog man’이 더 많은 시리즈가 배가되어 있는 것이 기억나 어린이를 바로 그곳으로 데려가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꺄!! 진짜 많다!! 지혜야 너도 여기 와봐 여기 도그맨 진짜 많아!”
빈 서가에 장서를 한 권, 한 권 꽂아 넣는 시간을 통해 책들에게 익숙해지고 예쁜 영어 동화책에 대한 애정이 몽글몽글 생겨났던 덕일까. 어떤 책이 어디 꽂혀있는지 대강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기에 어린이가 찾는 ‘Dog man’이 어떤 서가에 더 많이 비치되어 있는지 바로 떠올랐기에 다행이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에게도, 사서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영어 책들과 더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리즈가 인기가 많은지,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어떤 작가가 유명한지 등을 알기 위해서 계속해서 이용자와 소통하고 서가를 들여다보아야겠다.
일원라온영어도서관의 슬로건은 ‘책과 함께 나아가는’이다. 도서관이 영어독서를 통해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취지에서 설립한 영어특화 공공도서관. 영어책을 처음 접하는 유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는 초등학생과 청소년, 성인까지 영어 독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영어 교육이 시작되는 나이는 교육과정이 변하면서 과거에는 중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내려왔다가, 지금은 한글을 떼지 못한 어린 나이부터 알파벳을 접하기 시작한다. 도서관에 방문하는 어린아이들이 영어책에 푹 빠져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거나, 동생에게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자주 나누는 대화도 이렇다.
“이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영어책을 스스로 찾아 읽고, 내용을 이해하다니 진짜 신기해요!”
하지만 영어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이기 때문에, 영어학원이나 ‘영어도서관’의 이름을 빌린 사설 영어교육기관과는 다른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디 도서관에 방문하는 아이와 어른, 모든 이용자들이 영어 언어학습 그 이상을 넘어서 원서로 문학을 접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하고 바란다. 한국어로 번역된 해외도서는 소설 속 사건이 제1의 화자인 주인공과 제2의 화자인 번역가를 거쳐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은 두 번 다듬어지고, 만약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사건은 화자의 수만큼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공부로서의 영어보다는, 칼데콧, 뉴베리와 같은 저명한 문학상 수상 작품 등을 날것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영어독서를 통해 완벽한 해석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내용을 이해하고 작가와 직접 교류하는 느낌을 받는 경험을 이곳, 일원라온영어도서관에서 누릴 수 있으면 한다.
처음에는 텅 빈 공간이 어떻게 도서관이 될지 아득하기만 했는데, 개관 후에 사람들로 가득 차자 이제 제법 도서관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도서관에 책과 사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이용자가 있어야 도서관이 완성되는 것이랄까. 앞으로 해를 거듭해 가면서 일원라온영어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은 영어독자로 성장하고, 나는 뭐든지 해낼 수 있는 만능 사서로 성장하고, 도서관은 영어책 읽는 강남을 이끄는 배움터로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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