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골도서관 사서 이유선
 

우리는 저마다 정한 방향으로 찬찬히 걷거나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되고 싶은 직업도, 하고 싶은 일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모두 다르니 저마다 정한 방향대로 가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노화라는 과정을 거쳐 결국 그곳에 도착하면 우리의 개성이나 특별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노인’이라는 말만 남는다. 요즘은 노인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은발을 연상시키는 실버(silver)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며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활용 능력도 갖추고, 소비에도 적극적인 신세대 장·노년층을 네오실버라 지칭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는 이들은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학생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로,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친구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각자의 속도로 언제나 열정적인 학생·독자·친구인 못골도서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우리도 되고 싶다, 실버 포노 사피엔스!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모두가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세상의 모두'에 속하려면 남들의 스무 배 이상은 노력해야 할 65세 이상 노년층이 바로 그렇다. '그깟 스마트폰, 못 하면 어때'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의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대다수 서비스가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Metaverse)와 AI 인공지능의 시대, ‘그깟 스마트폰, 좀 못 하면 어때’라며 매일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서비스들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온갖 것들이 이루어지는 요즘 세상의 중심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걸어가 보기로 했다.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못골도서관은 2021년 강남구청에서 주관한 <평생학습 특성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만났다. ‘포용’이라는 지원사업의 키워드를 보는 순간, 우리 도서관 어르신들을 요즘 세상의 중심에서 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운명처럼 들었다.

<코로나 시대, 실버를 위한 나도 포노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짓고,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아 물어보기 부끄러운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을 5명 소수 정예로 반복해서 천천히, 그렇지만 알차고 재미있게 익혔다. 1기부터 3기까지는 단톡방 만들기, 와이파이 설정하는법, 연락처 공유하는 법, 스마트폰 어플 설치 방법 등 스마트폰 기본 기능에 대한 수업과 실습이 진행되었고, 기본 기능 수업 참여자 중 희망자에 한정하여 ‘시니어 스마트폰 활용 멘토 되기’라는 심화 수업이 진행됐다.

독학으로 했을 때는 답이 없던 스마트폰, 이 복잡한 골칫거리가 매주 목요일 오후 못골도서관에 모이자 마법처럼 해결됐다.
돋보기 앱을 어떻게 쓰는지 알게 되자 책 읽는 재미가 돌아왔다.
택시를 어플로 예약하는 방법을 배우고 집 밖을 나설 용기를 찾았다.
스마트폰으로 배달 음식을 어떻게 주문하는지 실습해보며 별미를 즐길 편안함을 얻었다.
손주들에게 어떻게 사진을 보낼지, 어떻게 사진을 꾸밀 수 있는지 배우고 언제 어디서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

2021년 12월 16일, ‘시니어 스마트폰 활용 멘토 되기’ 수업에 참여했던 소수 정예 스마트폰 멘토들은 스마트폰 실버 전문가가 되어 배운 것들을 나누고자 못골도서관 옆 서울 시니어스 강남타워에 있는 어르신들을 방문했다.

준비물은 그동안 배웠던 수업 자료와 배운 것을 나누고 싶은 애정 그리고 열정이었다.
가르쳐줬던 것을 또 물어봐도, 두 번 세 번 가르쳐드렸음에도 잘 이해하지 못해도 기다려줄 수 있었고, 반복해서 가르쳐드릴 수 있었다. 내가 겪었던 마음이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실버 포노 사피엔스가 되었다.
길었던 프로그램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배움과 나눔은 끝은 없을 것이다.
 

 

- 책으로 모이고 이야기로 꽃피우는 꽃드림 독서동아리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그 자체로 시가 된다.
그래서인지 꽃드림 시니어 독서동아리에는 매월 시인이 모여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매번 나누는 이야기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라 항상 새롭고도 반갑다.
많은 날을 지나와 어쩌면 크게 새로울 것 없는 안온한 일상에 조금은 생동감이 생긴다.
소소한 모임이지만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지난번에 이어 이번 달 또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행복하다.

지난 2020년과 2021년에는 COVID19라는 방해꾼이 정기 모임을 가로막았지만, 시니어 독서동아리 담당 사서인 나는 활동지를 만들어서 어르신들에게 가져다드렸다. 강남구청 문화체육과의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을 통해 구입한 도서와 문구도 어르신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었다. 재주 많은 어르신들은 선물 받은 도서와 문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시와 그림으로 보답하신다. 글과 그림에는 언제나 깊은 애정이 담겨 있어 그 자체로 멋진 작품과 보물이 된다.
사실 어떤 책을 주제도서로 고르던지, 사서인 내가 가장 많이 배우고 얻어갔다. 호원숙 작가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을 함께 읽은 날에는 어르신들만의 김치와 만두 레시피를 잔뜩 배운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늦게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 같은 책을 함께 읽은 날에는 책상 앞에 붙여두고 매일 되새기고 싶은 삶의 지혜를 얻는다. 모두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알짜배기 정보이다.

올해로 네 살이 되는 꽃드림 시니어 독서동아리에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다 담겨 있다.
어르신들은 시니어 독서 동아리 담당 사서가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당당하게 도서관에 들어오시고, 활기차게 책을 빌려 가신다. 얼굴이라도 마주치는 날이면 봄꽃 같은 환한 미소로 반겨주시는 모습에 행복이 전파된다.
나이 들어 좋다. 이토록 멋진 실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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