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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끊긴 관계 잇는 ‘연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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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일자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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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조성명 강남구청장(왼쪽 둘째)이 세곡동 주민들과 함께 제1힐링텃밭에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낼 김장김치 450상자를 만들고 있다. 이날 사용한 배추 1100포기는 세곡동에 새로 조성한 제2힐링텃밭의 시범경작 농작물이다. 강남구 제공
11월18일 조성명 강남구청장(왼쪽 둘째)이 세곡동 주민들과 함께 제1힐링텃밭에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낼 김장김치 450상자를 만들고 있다. 이날 사용한 배추 1100포기는 세곡동에 새로 조성한 제2힐링텃밭의 시범경작 농작물이다. 강남구 제공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보니 구청장으로서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코로나19라는 장벽으로 끊어진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다시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다시 모인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경청하며 지역 현안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다. 민선 8기의 순항은 이러한 연결이 어긋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서로를 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결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신사동에 홀로 사는 80대 노인이 일요일 밤잠을 깨서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졌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대퇴골이 부러진 것이다. 밤이 지나 아침이 왔지만 밤새 불 켜진 집에서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한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때 기적처럼 사람들이 나타나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신사동 주민센터 직원들과 경찰은 16시간 만에 그를 구조했다.

이 기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배우자를 잃은 뒤 보호자 없이 어렵게 지내는 그를 주민센터 복지팀 직원이 눈여겨봤다. 평일엔 매일 점심을 먹으러 경로당에 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경로당 총무에게 당부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꼭 연락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 말을 흘려듣지 않은 총무가 연락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서로 연결된 사람들이 한 생명을 구한 감동적인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연결은 사람을 회복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대치동에 있는 청소년심리지원센터 ‘사이쉼’은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청소년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상담 선생님과 청소년의 일대일 상담에 비해 집단상담 프로그램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이를 개별 상담한 전문가들이 모여 아이들의 상태와 성향에 대해 토론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또래들을 연결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이쉼에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고수하는 이유는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진정한 연결의 힘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자신이 좋아하는 또래집단에 온전하게 소속돼 있다는 마음은 아이들을 회복시키고 다시 힘을 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연결과 회복은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이번에 세곡동의 1100평 유휴지를 확보해 새롭게 텃밭을 조성하고 내년에 구민들에게 분양할 계획이다. 금싸라기 강남 땅에 텃밭을 조성한다는 것은 경제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피워낸다. 텃밭을 찾는 사람들은 사계절 변하는 자연을 느끼고 정직한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는 텃밭에서 난생처음 흙 아래 감춰진 식물의 뿌리를 직접 보고 물을 준다. 어린 시절 농사지었던 어르신은 다시 흙을 만지면서 그 시절을 회상한다. 텃밭에서 사람들은 금세 정겨워지고 이웃이 된다. 빌딩숲 가득한 도시에 자연 속 공간은 사람을 연결하고 회복시킨다.

어떤 간절한 마음은 서로 연결돼 실제로 길을 만들기도 했다. 그동안 보도가 없었던 12개 초등학교 통학로에 보도 공사를 추진해 10개교에 보도가 생겼다. 남은 2개교는 도로 사정으로 학교 안 부지를 활용해 보도를 만드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기존 길을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도로와 집이 닿아 있는 거주자들의 반대 의견을 설득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에서부터 학교 가는 길이 안전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다른 마음을 설득했고, 사람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학교 앞 안전 문제에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지역 공동체는 회복된다.

한 사람에게서 뻗어 나온 선은 실처럼 가늘다. 하지만 이 가느다란 실이 모이면 단단한 밧줄을 만들 수 있다. 밧줄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튼튼한 안전망이 된다. 실을 밧줄로 만드는 기적은 바로 타인을 걱정하고 주의 깊게 살피는 어진 마음이다. 한자 ‘어질 인’(仁)은 가까이 지내는 두 사람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가까이 지내지만, 미처 마음을 다해 들여다보지 못한 누군가의 마음을 한 번 더 헤아려보는 연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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