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롯(Brain Rot) 끊임없는 릴스 스크롤로 뇌 썩는 줄 모르는 시대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발행하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브레인 롯’을 선정했다. 브레인 롯은 뇌(Brain)와 썩다(rot)를 합친 신조어로, ‘뇌가 멍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틱톡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계속 스크롤 중이라면 이 단어를 의심해 봐야 한다.
브레인 롯은 2024년을 풍미한 단어 중 하나이다. ‘뇌 썩음’ 또는 ‘뇌 부패’ 등으로 직역되 는 브레인 롯은 문자 그대로의 뇌 손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뇌 썩음'은 저품질의 온라인 콘텐츠를 과잉 소비해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거나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옥스퍼드사전의 그래스월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츠의 사용과 제작을 주로 담당하는 제트 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 출생)와 알파 세대(2010년대 이후 출생)들 사이에 이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심리학자 앤드루 프시 빌스키 옥스퍼드대 교수는 브레인 롯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의 증상”이이라고 평했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틱톡에서 무심코 몇 시간씩 스크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비단 Z세대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브레인 롯’롯’을 선정한 것에 대해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온라인 콘텐츠의 과도한 소비로 인해, 사람의 정신적 상태가 악화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옥스퍼드대 출판부에 따르면 브레인 롯의 사용 빈도가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에 230.0% 증가했다고 밝혔다. 브레인 롯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1854년 미국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에서였다. 소로는 저서에서 사회가 복잡한 아이디어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브레인 롯에 빗대면서, 정신적이고 지적인 노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과정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썼다. 현대에 와서는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부작용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브레인 롯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1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을 의미하는 ‘쇼트폼(short-form) 동영상’을 꼽는다.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할 때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쇼트폼 동영상에 오래 노출될수록 브레인 롯에 시달릴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는데 오늘날 신선놀음이 ‘스마트폰 릴스’로 대체된 것은 아닐까
옥스퍼드 사전은 매년 연말이면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왔다. 전 세계 전역의 영어권 뉴스 출처에서 수집한 190억 개 이상의 단어 중에서 선정된다. 선정 기준에는 그 해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되는 동시에 앞으로 지속될 문화적 잠재력이 고려된다. 브레인 롯에 대해 ‘중독’이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일종의 문화코드로 이해하는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브레인 롯은 ‘드뮤어’(Demure),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로어’(Lore), ‘로맨타지’(Romantasy), ‘슬롭’(Slop) 등의 단어와 경쟁했다고 하는데 이 단어들 역시 2024년의 시대상을 돌아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과연 2025년에는 또 어떤 단어들이 이 세상을 풍미하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