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Hip 폼 나는 독서 놀이
요즘 SNS를 중심으로 ‘텍스트힙’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신조어가 자주 등장한다. Z세대로 불리는 10~20대 사이에는 SNS를 통해 독서 인증, 책 추천, 글귀 공유 등을 놀이처럼 즐기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쇼츠와 릴스가 범람하는 시대라는 말이 무색한 현상이다.
‘텍스트힙’은 ‘텍스트(text)’와 멋지다는 의미로 쓰이는 ‘HIP’을 합친 신조어이다. 독서를 즐기는 행위를 멋지다고 여기며 SNS에 자신이 읽는 책을 소개하거나 필사, 독서 모임등의 활동을 통해 독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마치 놀이처럼 퍼지고 있다. 친구들끼리 직장동료들끼리 서로 책 읽는 모습을 찍어주고 SNS에 올리고 맞댓글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실제로 Z세대의 소셜 미디어로 통하는 틱톡에서 해시태그(#) ‘북톡(booktok)’을 검색하면 수십만 건의 게시물이 뜬다. 주로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책을 추천하는 콘텐츠들이다. 북톡은 글로벌 챌린지로, 전 세계 참가자들이 해시태그를 통해 책 추천, 서평, 독서 인증, 독서 토론 등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초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은 “독서는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란 제목으로 “영국 Z세대 사이에서 종이책을 읽는 행위가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는 것을 보면 텍스트힙은 확실히 세계적 현상으로 보인다.
60초짜리 쇼츠와 릴스의 범람 속에서 텍스트는 어떻게 Z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텍스트힙 현상은 늘 ‘새로운 문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Z세대의 욕구에서 출발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Z세대로 통칭되는 10~20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틱톡, 스냅챗, 트위터, 인스타와 같은 숏폼에 익숙한 세대다. 문제는 기성세대에겐 ‘신문물’ 같은 영상 미디어가이들에겐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너무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탓이다.
영상보다 텍스트가 힙하게 느껴지는 배경이다. 게다가 Z세대는 학교 수업까지 비대면화되는 급격한 디지털화, 학교 교재의 태블릿화, 영상 기반 SNS 플랫폼들의 범람 등으로 디지털 매체에 대한 피로도가 어느 세대보다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자극의 반작용으로 종이책을 읽고 종이 수첩에 쓰며 텍스트에 빠져든 것이 요즘의 텍스트힙이라는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절묘하게 만나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텍스트힙이 실제 독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목소리도 있다. 책을 읽는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는 이들이 책을 소비하는 방식일 뿐, 남들과 다른 소비를 한다는 일종의 과시라는 분석이다. 책을 자기 과시에 활용한 예는 예전에도 있었다. 수십 권짜리 전집을 거실에 장식으로 가득 꽂아놓고 살던 시대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 선비들도 ‘책가도’를 병풍으로 두르고 자신의 학문과 재력을 과시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세대들의 텍스트힙은 책을 읽는 행위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어디로 튈지 모를 Z세대의 취향이 텍스트에 꽂힌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인용하기도 부끄러운 한국인의 독서량을 요즘 Z세대가 끌어올리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텍스트힙은 Z세대들의 그저 그런 독서 놀이에 그치지 않고 도서전, 북카페, 팝업스토어 등으로 번지면서 문화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있어 더욱 반가운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