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룡산 친구들’이 들려주는
양재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1963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시작된 네 사람의 인연은 6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건축가로, 지역개발 분야 공무원으로, 건설기업의 일원으로 소임을 다한 벗들. 은퇴 후에도 만남을 이어오다가 5년 전부터는 양재천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팬지, 수국, 장미 등 6월의 꽃들로 화사하게 장식된 양재천 밀미리 다리 중간, ‘석룡산 친구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요즘 대학생들이 과잠(학과별 잠바)으로 소속감을 표현한다면 이들은 검정색 플랫 캡(Flat cap)을 맞춰 썼다.
“등산을 좋아하는 우린 몇 년 전 가평 석룡산에서 의기투합해 ‘석룡산친구들’이란 모임명을 만들었죠. 모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63학번 동기입니다. 저는 건축과를 나왔고 시승일, 김동복, 정동수는 토목과를 다녔죠. 서로 연락하며 지내다가 5년 전부터 매달 이곳 양재천 밀미리 다리에서 만나고 있어 요. 그리고 적십자사, 칸트 동상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산책합니다. 모일 때마다 새로운 양재천을 보며 감탄하곤 합니다. 80년대 이전, 양재천이 오수로 가득했던 모습을 보고 ‘과연 이 하천에 미래가 있을까?’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양재천에 올 때마다 흐뭇합니다.”
대치동에 거주하는 이학영 씨는 양재천의 사계를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6년여 동안 해오고 있을 정도로 양재천에 대한 애정이 크다.
서울시 하수과장을 지낸 시승일 씨는 1992년 하천정비계획을 수립하며 양재천 개발계획에 관여한 바 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개발계획 수립되고 3년 뒤인 1995년에 양재천 공원화 사업이 성공리에 이루어졌지요. 양재천은 우리나라 최초로 생태하천 공법을 적용한 자연생태하천입니다. 이후 전국의 하천 개발계획의 ‘시조’이자 ‘교과서’가 됐지요. 상습 침수를 해결하는 기능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자연의 터전으로서 시민의 쉼터라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요.”
내무부에서 지역 정책개발 분야의 감사업무 등을 맡았던 김동복 씨도 양재천을 거닐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제가 국가하천, 국도 개발과 정비 등의 마스터플랜을 세울 때 자전거도로와 친환경 화장실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양재천을 거닐며 남녀노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풍경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화장실도 깨끗이 관리되는 걸 보면 강남구 행정의 섬세함과 높은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죠.”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퇴임했다는 정동수 씨도 양재천 자랑을 보탰다.
“영동 3교에서 양재천을 지나 꺾어져 작은 길로 접어들면 매봉산입니다. 이즈음부터 울창한 나무 그늘이 아주 좋아요. 매봉산 화장실은 물 공급, 악취, 버림, 수거가 없는 4무(無)의 친환경 화장실입니다. 우리 공대생들은 이런 것에 감동해요. 친환경적이면서도 한파에도 동파 없이 건재한 양재천 일대의 화장실도 우리가 양재천의 자랑으로 꼽는 것이죠.”
네 사람에게 미래 양재천의 모습이 어떨지 물었다. 네 명의 벗들은“양재천은 더욱 푸른 자연의 터전으로서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전해주는 역할
을 할 것”이라고 했다. 양재천을 향한 강남구민들의 사랑과 시민의식이 그 믿음의 증거라며 네 명의 친구들은 싱그러운 산책길, 초여름의 녹음 속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