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심은 사랑의 씨앗, 희망의 숲을 이루다 래그랜느 보호작업장 남기철 이사장
자폐성 장애인 아들이 ‘돌봄의 대상’이 아닌 ‘자립의 주인공’이 되길 소망한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을 지원하는 단체를 만들었고, 이어 장애인 보호작업장 ‘래그랜느’를 비롯, 자립공동체 모색을 위한 농장을 열었다. 이처럼 사랑의 씨앗을 심어 하나둘 결실을 보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사단법인 밀알천사의 남기철이사장이다.
강남구 일원1동에 자리한 장애인 보호 작업장 ‘래그랜느’(LES GRAINES)의 문을 열자, 쿠키 향이 은은히 감돌았다. 오후 휴식까지는 아직 한 시간쯤 남았지만, 작업자 한 명이 불편한 표정으로 휴게실에 앉아 있다. 그러자 누군가 다가가 그의 눈을 맞추며 다독인다.
“괜찮아? 좀 쉬어 보자.
자, 깊이 숨 쉬고!”
잠시 후 작업자는 거짓말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작업공간으로 돌아갔다. 당황한 기색 없이 너른 아버지 품으로 작업자를 보살핀 이는 ㈔밀알천사의 남기철 이사장(71)이다. 래그랜느는 ㈔밀알천사가 운영하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이다. 남 이사장은 방금 전 상황에 대해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래그랜느를 시작하던 13년 전에 비하면 좋아졌어요. 대화뿐만 아니라 눈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공정을 하나하나 익히는 게 쉽지 않았어요. 쿠키를 판 위에 하나씩 올려놓는 일조차 버거웠던 아이들인데, 지금은 0.1그램의 오차 없이 쿠키를 성형합니다. 무엇보다, 일하면서 아이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서 기쁩니다. 표정이 밝고 건강해졌으니까요.”
아버지의 사랑,
천사 같은 아이들
남 이사장은 래그랜느 작업자들이 장애인들의 평균 근속 연수에 비해 두세 배나 길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오래된 만큼 직원 하나하나가 자식 같다며 ‘우리 아이들’이라는 호칭이 입에 익었다고 했다. 지나온 시간이 고될 법도 하지만, 오히려 남 이사장은 래그랜느 작업자들로부터 티 없이 순수한 천사의 마음을 배운다고 전했다.
그는 그런 ‘천사 같은 아이들’과 함께해온 여정을 3권의 에세이집으로 엮기도 했다. 그는 또, 자립 공동체에 대한 구상도 들려주었다.
“7년 전부터 포천에서 농장을 꾸리고 있어요. 이런저런 채소도 기르고 아로니아나 보리수도 심어 가꾸고 있지요. 훗날 아이들이 자립하며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터전이 되길바랍니다.”
홀로 설 수 없는 게 인생인 만큼, 자립의 꿈을 키워가는 래그랜느의 사람들은 나눔도 활발하게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소아암병동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모양의 쿠키를 선물한다. 그리고 첼로며 섹소폰, 오카리나 연주를 배워 치매 어르신을 찾아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으로 심은 사랑의 씨앗이 희망의 숲을 이루어가고 있다. 남 이사장은 그 희망의 숲이 더욱 커지길 바랐다.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는 한 희망을 만드는 ‘아버지의 사랑’은 멈추지 않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