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Dream 드림
도심 속 쉼터
궁마을 역사탐방로로 떠나볼까
강남의 한복판에 자연과 역사 문화재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 수서역에서 출발해 궁마을-봉헌사 절터-가마터 유적지-광평대군 묘역으로 이어지는 약 2.6㎞ 길이(도보 약 40분 소요)의 ‘수서동 궁마을 역사탐방로’가 바로 그것. 대모산 자락을 마주하고 초록색 녹지가 어우러진 이 길을 걷다보면 자연의 푸근함을 닮게 된다.
‘조선 궁마을’ 유래 따라 걷는 도심 산책길
지난해 9월 조성이 완료된 수서동 궁마을 역사탐방로는 수서역 서쪽에 자리한 고즈넉한 마을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대모산 자락에 터를 잡은 크고 작은 주택들이 터줏대감처럼 모여 있는데, 자연과 조화되는 옛 가옥들이 많아 운치를 더한다. 수서역 6번 출구에서 오른편으로 조금만 걸어 나오면 궁마을 입구와 먹자골목이 등장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골목골목에 자리잡은 맛집들 중에 한 곳에 들러 요기를 하고 출발해도 좋다.
‘궁마을’이란 이름을 갖게 된 까닭은?
세종대왕의 다섯 번째 아들 광평대군(1425~1444년)에게는 외아들 영순군이 있었는데, 1470년 별세한 후 수서동 광수산에 묘소를 조성했다. 이후 무안대군(광평대군의 양아버지)과 광평대군의 묘소를 이장하고 영순군의 아들 삼형제(남천군, 청안군, 회원군)가 인근에 살게 되면서 궁말(궁마을), 궁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궁마을 앞마당에서 수서동 유적지까지
궁마을 먹자골목을 조금 지나면 궁마을 앞마당이 눈에 띈다. 종종 전통 공연과 같은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곳이다. 여기서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탐방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탐방로를 걸어 수서근린공원을 지나면 수서동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대모산 북동쪽 사면부에 위치한 이곳은 오래 전에 ‘수서동 절골사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곳으로, 2012년에 세곡2 공공주택지구를 개발하다가 발굴되었으며, 역사학자들은 고지도와 문헌 사료를 분석해 ‘봉헌사’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에 이 유적들을 현재 위치로 이전 복원해 향토유적 시설로 조성하였는데 남쪽으로는 대모산의 푸른 숲을 마주 볼 수 있어 잠시 한숨을 고르고 쉬어갈 만하다.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면 가마터를 복원한 장소가 나타난다. 가마터 윗부분을 잘라내어 가마터 내부를 볼 수 있고, 일꾼이 가마터에서 일하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있어 흥미를 북돋운다. 일꾼의 얼굴에서 뜨거운 가마의 열로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뚝 떨어져 나올 것만 같다.
가마터 옆에는 경작지가 있었는데 정비 사업을 통해 ‘궁마을 비원’으로 탈바꿈했다. 궁마을의 숨겨진 아름다운 비밀정원이라는 콘셉트로 백일홍, 복자기 등 고유 수목과 풀 종류의 꽃 1만3천 본을 심었다. 데크에 앉아 있으면 은은한 봄꽃과 싱그러운 여름 초목, 가을 낙엽과 겨울 설경 등 사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껴볼 수 있다.
수서동 유적지에서 광평대군 묘역까지
대모산을 등지고 아파트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궁마을 공원에 이른다. 지금 한창 봄꽃을 틔우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곧 여름이 되면 지난해 7월에 주민 130여 명이 직접 심은 장미 2724주가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장관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운 날이면 공원 한복판에 놓인 시원스러운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사방치기와 같은 전통놀이를 즐기며 어릴 적 회상을 해보는 것도 덤이다.
궁마을 공원에서 길을 건너 태화복지관을 오른쪽으로 끼고 걸어가면 광평대군 묘역(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8호)이 나온다. 탐방로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서울 근교의 왕손 묘역 중 원형을 가장 잘 유지·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묘역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광평대군은 세종대왕의 다섯 번째 아들로,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별세한 탓에 외아들 영순군만 두었고, 그의 묘소는 무안대군과 영순군의 묘소와 합쳐져 현재에 이른다. 묘역 주변에는 세장기비, 신도비, 묘비 등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높은 석조물을 비롯해 700여 개의 묘가 41만2627㎡(약 12만5천 평)의 부지에 질서정연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삶의 여정에서 만나보는 궁마을 산책
수서동 궁마을 역사탐방로를 걷다보면 어디나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아직 예스러운 분위기가 남아있는 옛 건물들, 거기에서 바로 이어지는 탐방로, 빽빽한 고층 건물 틈에서 숨을 고르게 해주는 대모산, 그리고 산자락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식당, 공원, 작은 쉼터들…. 지금 이 길을 찾는다면 분명 혜택받은 사람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 옛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넘쳐났던 기억을 두고두고 꺼내어 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