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 사랑의 힘은 경이로운 것이어서 사람의 생을 관통하기도 한다. 60년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도장 명인의 길을 걸어온 조중선 선생의 삶이 그러했다.
“아버지께서 도장 만드는 일을 하셨어요. 그 모습이 좋아서 따라했고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도장을 만들었죠. 도장 장인으로 사는 일이 힘들었는데 아버지는 말리지 않으셨고 그저 정직하고 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글자만 잘 새긴다고 장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글자를 잘 써야했다. 젊은 날 조중선 선생은 이름난 서예가를 찾아가 서예를 배웠고 대학을 찾아 다니며 역학, 명리학을 공부했다.
하여 고객의 이름을 받으면 글자의 획순에 따라 성명을 풀고 그 사주를 반영하여 인(印) 장(章) 신(信)의 첨자를 하기도 하고, 글자를 새길 때 강약을 반영하거나 오행에 따라 나무, 옥, 금속 등 재료를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도장에 좌에서 우로 쓴 좌서(左書)를 새기는 작업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이 작업은 화선지에 우서(右書) 한 뒤 도장에 좌우를 뒤집어 붙여 글자를 새긴다. 조 명인은 재료에 바로 좌서를 하고 각자(刻字)해 완성도를 높였다.
동대문 지역에서 장인의 길을 걸었던 조중선 명인은 30여 년 전, 강남구 논현동으로 옮겨온 이래 지 금까지 한자리를 지키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열정과 자부심을 간직한 공간 상신당(相信堂)은 맏딸 조서희(57) 씨와 맏사위 김민준(57) 씨가 장인 3대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시대 의 흐름에 맞추어 상신당을 운영해가고 있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 변함없이 지켜가고 있는 것이 바로 ‘제작 기간 3일’의 원칙이다.
“기계 인장 조각기로 만들면 몇 분만에도 도장이 완성돼요. 저희는 도장 주인의 이름을 파악하는 날, 아버지께서 좌서하고 각인하시는 날, 날인의 품질을 따지고 보증하는 날, 이렇게 3일을 제작 기간으로 지켜가고 있어요. 아버지의 작품을 아끼는 분들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종일 작업에만 매달리던 그는 이즈음 아침에 운동을, 오후에는 섹소폰 동호회 활동을 한다. 오전 11시 작업실에 출근하여 5시에 퇴근하니 삶이 정중동 (靜中動)의 여유로움을 찾았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조 명인은 “거목을 이기는 건 여려도 뻗어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풀”이라며 “어려움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승리한 인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