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담당자의 사서고생담

글 : 대치도서관 사서 안의채
 

 

  강남구립 대치도서관의 비전을 하나 세운다면 “클래식하지만 촌스럽지 않게”를 제안하고 싶다. 도서관의 얼굴인 포스터, 현수막, 배너, 영상 등 각종 홍보물을 제작한지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관장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시는 ‘클래식함’과 ‘촌스러움’의 경계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 중이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 균형을 잃고 촌스러워지거나,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기에 한시도 방심은 금물이다.

“이건 너무 화려하고 복잡하지 않니?”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알록달록 유치하면 안 돼.”
“이건 저번이랑 느낌이 비슷한데? 다른 걸 찾아보자.”
“제목이 눈에 띄지 않는데 다른 폰트로 해보는 게 어떠니? 음영도 넣어보자.”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관장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며 이런 시련을 안겨준 세상을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퇴근길 대문을 박차며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됐고 포스터 수정을 몇 번 했는지 가족들에게 털어놓곤 했다. “이게 그렇게 별로예요?” 가족들은 나의 기분을 달래주며 괜찮다고 다독여주었지만, 자식 같은 포스터를 지워야 하는 아쉬움과 속상함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옛 속담이 있다. 우연히 스마트폰 사진첩을 정리하다 포스터 하나를 발견했다. 입사하고 처음 만들었지만, 혹평을 듣고 가차 없이 갈아엎었던 눈물의 첫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잘 만들었다고 뿌듯해하며 사진첩에서 종종 꺼내 보곤 했었는데, 인제 와서 보니 정말 말 그대로 ‘촌스럽게’ 느껴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4년 새 안목이 생긴 건지, 취향이 바뀐 건지, 스스로의 반응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외줄 타기를 하며 떨어지는 게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저 멀리까지 내다보는 넓은 혜안을 갖추기까지 자그마치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조금씩 고개를 들며 이제는 관장님이 말씀하신 ‘클래식’의 의미를 차츰 깨우치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곁에 두고 오래도록 보고 싶은 클래식함 말이다.

  
 

  “이분은 언제 돌아가셨을까요?” 홍보물 담당자는 저작권 문제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39조에 규정된 저작권의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후 70년’이다.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세계 유명 화가의 명화로 홍보물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생몰년(태어나고 사망한 해)을 일일이 다 조회한다. 간혹 100년 전에 활동한 화가니 괜찮을 거라며 무심코 사용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대표적이다. 피카소는 1973년 사망했으므로 그의 작품은 2044년 12월 31일까지 저작권이 보호된다. 만일 23년 뒤 54세의 나이에도 도서관에서 홍보물을 만들고 있다면, 꼭 피카소의 작품을 도서관 전경에 멋지게 걸어두고 싶다.

폰트를 사용할 때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반드시 기업이 상업적으로 무료 이용할 수 있는 폰트여야 하며 관련 규약이 바뀔 수 있으니 수시로 확인하고 사용해야 한다. 3년 전 홍보 업무에 도움을 얻고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도서관과 저작권」 집합교육을 수강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서 선생님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저작권 문제로 폰트 회사한테 고소를 당해 억울함을 호소하던 분도 계셨다. 강남구립도서관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소송사건 이후로 별도의 지침을 만들어 저작권을 꼼꼼히 관리하고 있지만, 실제로 곤란에 처한 사서분을 직접 만나 뵈니, 문득 홈페이지에 올라간 수많은 포스터가 뇌리를 스쳤다. 행여나 팩스로 고소장이 날아오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문화행사 게시판에 올라간 포스터들의 폰트를 전부 확인하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정부 지침에 따라 성차별적 내용을 포함한 홍보물들을 전면 수정한 적이 있다. 평소 관심 있던 주제라 당연히 해당 사항이 없을 거라 자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통적인 성역할이나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 있는 표현이 더러 발견되었다. 한 예로, 가족 대상 프로그램 홍보물에 ‘부부와 자녀’만으로 구성된 이미지를 넣은 것이 문제였다.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다문화가족 등 현대사회 여러 가족의 형태를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성별과 연령, 인종의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미지로 수정하였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지역주민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홍보물 제작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한 계기였다.

  성장은 곡선이 아닌 ‘계단형’이라고 한다. 정체되어있는 것 같지만 인내심을 갖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보면 어느덧 고지의 상쾌한 공기를 맛볼 수 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은 곧 자양분이 되어 오늘의 나를 숨 쉬게 한다. 한평생 도서관 사서는 책만 볼 줄 알았는데, 책보다는 포토샵을 가까이하는 홍보 담당자가 되었다. 디자인 기술뿐만 아니라 저작권법 준수, 성평등 의식까지 올라야할 계단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평생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수정 없이 한 번에 승인되는 그날까지 오늘도 나는 포토샵을 켠다.

mk0405@gangnam.go.kr
인용 보도 시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제37조(출처의 명시)
① 이 관에 따라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그 출처를 명시하여야 한다. 다만, 제26조, 제29조부터 제32조까지,
제34조제35조의2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1. 12. 2.>
② 출처의 명시는 저작물의 이용 상황에 따라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하며, 저작자의 실명
또는 이명이 표시된 저작물인 경우에는 그 실명 또는 이명을 명시하여야 한다.
제138조
제138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1. 12. 2.>
1. 제35조제4항을 위반한 자
2. 제37조(제87조 및 제94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위반하여 출처를 명시하지 아니한 자
3. 제58조제3항(제63조의2, 제88조 및 제96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저작재산권자의 표지를 하지 아니한 자
4. 제58조의2제2항(제63조의2, 제88조 및 제96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위반하여 저작자에게 알리지 아니한 자
5. 제105조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저작권대리중개업을 하거나, 제109조제2항에 따른 영업의 폐쇄명령을 받고 계속 그 영업을 한 자 [제목개정 2011. 12. 2.]
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강남구청 www.gangna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