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강남구립 열린도서관 염지연 사서, 신인영 사서

시작은 이랬다. 고향이 제주도인 막내 사서는 평소 친할머니 흉내를 낼 때 제주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곤 했는데, 어느 날 점심식사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순도 99.9%의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다.

“(깔깔 웃으며) 와 근데 제주도 말 진짜 어렵다. 선생님, 이거 애들은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
“(역시 배를 잡고 웃으며) 사서 선생님에게 배우는 제주도 사투리 시간~!”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배워서 남주는 사~서~!”


그러니까 1년 동안 이어진 강남구립 열린도서관의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 '배남열사 : 배워서 남주는 열린도서관 사서들'은 밥상머리에서 그 첫 발을 뗐다는 이야기. 무릇, 어떤 일의 서막은 이토록 미약한 법이다.

이야기가 구체화된 것은 연초에 진행된 2021년 열린도서관 프로그램 기획회의였다. 첫째, 아직 예산을 집행할 수 없으니 (공공도서관 예산은 3월부터 집행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비어있는 2월부터 하자. 둘째, 사서 인원에 맞춰 12월까지 격월로 하자. 셋째, 수업 주제는 각자 흥미 있는 것으로 정하자. 열린도서관의 전 사서가 참여하고, 문헌정보학과 실습생 세 명이 참관한 회의에서 결정된 일련의 사항은 한글 파일로 가지런히 정돈돼 공유폴더에 저장됐다. 파일명은 이랬다. '작전명 : 배남열사 프로젝트'

작전이라니. 누군가는 전쟁터에 나가느냐고 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목소리가 염소 울음처럼 떨리는 사람에게는 중차대한 임무가 아닐 수 없다. 정도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내가 강사가 돼 도서관 이용자를 만난다’는 사실에 다른 사서 선생님들도 긴장과 부담을 안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Part 1. 작전수립 : 코드명 ‘필승’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직장인의 웹툰 바이블 '미생'의 김부련 부장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화려하게 할 것이냐, 소박하게 할 것이냐, 꼼꼼하게 할 것이냐, 러프하게 할 것이냐, 이 문제가 아니라 이 일을 왜 할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 무엇으로 할 것이냐, 언제 할 것이냐, 누가 할 것이냐, 이 문제라고.”

대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답해보자면 이렇다.
언제 할 것이냐? 2월부터 격월로,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날’에 한다.
누가 할 것이냐? 열린도서관 사서들이 한다.
어떻게 할 것이냐? 코로나라는 엄중한 시국이므로, 실시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온라인 회의 플랫폼 ZOOM(줌)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따라서 장비의 제약이 적을수록 좋다.
무엇으로 할 것이냐? 최소한의 비용으로 5명 내외의 인원이 짧은 시간 동안 배울 수 있는 것, 그 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정말 관심 있고 나의 장점 혹은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가르치는 내가 즐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니까.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이 일을 왜 할 것이냐?’

농담처럼 시작된 기획이었지만 그냥 보기에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붙이기는 싫었다. 결국, 이 질문에 관한 대답은 배남열사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찾아가 보기로 하고, 우리는 각자 세부적인 계획안을 세우기 시작했다. 결코 짧지 않은 논의 끝에 대략적인 진행순서와 주제, 진행대상을 확정했다.
 
배남열사, 배워서 남주는 열린도서관 사서들 첫번째 이야기는 사서와 동화구연입니다.  배남열사, 배워서 남주는 열린도서관 사서들 두번째 이야기는 RC기어로 작동하는 악어입니다.
배남열사, 배워서 남주는 열린도서관 사서들 세번째 이야기는 사서와 비즈팔찌 만들기입니다.  배남열사, 배워서 남주는 열린도서관 사서들 네번째 이야기는 사서와 보석십자수입니다.
배남열사, 배워서 남주는 열린도서관 사서들 다섯번째 이야기는 사서와 시입니다.  배남열사, 배워서 남주는 열린도서관 사서들 여섯번째 이야기는 사서와 뜨개질입니다.

Part 2. 작전수행 : ‘결전의 날’을 위하여
2021년 11월 15일 기준 5회가 진행된 <배남열사>는 모두 아동을 대상으로 치러졌다. 12월에 진행 예정인 올해의 마지막 배남열사 역시 아동 대상의 뜨개질 수업이다. 모두가 짠 것처럼 아동을 대상으로 설정했을 때, 공감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기엔 우리 실력이 미비하죠.”

맞는 말이다. 어른을 앞에 두고 강연을 하기란 제 아무리 절륜한 강사여도 힘든 일이니까.

“그렇지만 아이들이라고 무작정 쉽진 않고요.”

물론 이것도 맞는 말. 어린이 이용자의 얼굴은 천진해서, 재밌으면 재밌는 대로, 지루하면 지루한 대로, 모든 감정을 드러내곤 하니까.

“그래도 연장자보다는 어린 친구들을 대하는 게 덜 어렵지 않을까요?”

누군가 말했다. 어려움 대 어려움. 우리는 만장일치로 차라리 아이들에게 상처받기를 선택했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역시 ‘만들기’가 제격이다. 텍스트로만 꽉 찬 수업은 강의안을 구성하기도 어렵고, 자칫 지루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것을 함께 만들기 시작하면 일단 완성되기까지 집중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 완성물이 있으니 성취감도 채워진다. 여럿이 공유하는 한 가지 목표가 있으니 나름의 경쟁심도 불러일으켜 더 열심히 한다. 진행자의 입장에서는 수업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덜하다. 이렇게 적으니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아이들을 하나하나 신경 쓸 수 없는 점이 가장 큰 한계다. 진행이 더딘 아이의 옆으로 가서 바로 도와줄 수 없고, 한 번 진도를 놓친 아이는 빠르게 포기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때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업 진행일 전까지 물품을 나눠주는 것 또한 결코 만만찮은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점이 단점을 압도한다고 판단해 최대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대상과 주제를 정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수업 준비에 박차를 가할 차례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매끄럽고 완결성 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과연 몇 단계를 거쳐야 할까? <배남열사 네 번째 : 보석십자수> 편을 예로 들어 대강의 ‘작업 단계’를 설명하면 이렇다. 

   1단계 : 적정한 예산의 물품을 탐색한다.
   2단계 : 발품을 팔아 물품을 구입한다.
   3단계 : 물품에 이상이 없는지 검수한다.
   4단계 : 참여자들에게 물품을 나누어준다.
   5단계 : 직접 만들어보며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점검한다.
   6단계 : ZOOM을 통한 리허설을 진행한다.
   7단계 : 피드백을 통해 수업내용을 보강한다. 
   8단계 : 두둥! 마침내 프로그램 진행의 시간이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역시 ‘만들기’가 제격이다. 텍스트로만 꽉 찬 수업은 강의안을 구성하기도 어렵고, 자칫 지루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것을 함께 만들기 시작하면 일단 완성되기까지 집중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 완성물이 있으니 성취감도 채워진다. 여럿이 공유하는 한 가지 목표가 있으니 나름의 경쟁심도 불러일으켜 더 열심히 한다. 진행자의 입장에서는 수업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덜하다. 이렇게 적으니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아이들을 하나하나 신경 쓸 수 없는 점이 가장 큰 한계다. 진행이 더딘 아이의 옆으로 가서 바로 도와줄 수 없고, 한 번 진도를 놓친 아이는 빠르게 포기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때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업 진행일 전까지 물품을 나눠주는 것 또한 결코 만만찮은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점이 단점을 압도한다고 판단해 최대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6단계와 7단계로, 여기서부터는 다른 사서 선생님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비디오 화면은 잘 보이는지, 목소리가 너무 작지는 않은지, 설명이 너무 어렵지는 않은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 강연 전반에 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적의 강의 환경을 설정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6단계와 7단계로, 여기서부터는 다른 사서 선생님들과의 협력이 필수다. 비디오 화면은 잘 보이는지, 목소리가 너무 작지는 않은지, 설명이 너무 어렵지는 않은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 강연 전반에 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적의 강의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수업 당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발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프로그램실로 향한다.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아아, 목도 한 번 풀어본다.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아 물도 한 모금 삼킨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줌 강의실로 입장한다. 휴우, 숨 한 번 고르고, 비디오를 켠다. 음소거를 해제하고 밝게 웃는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Part 3. 그리고 마침내, 임무완료
이제 앞에서 미뤄두었던 질문에 답을 내릴 참이다. 왜 배남열사를 진행한 것인가? 우리가 찾은 대답은 무척 단순하다. 이용자를 위해서. 진부한 대답에 허탈함을 느낄지도 모를 당신을 위해 조금 더 설명을 덧붙여본다. 

'배남열사'는 강의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든 준비를 사서가 도맡는다. 이 명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높은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용자가 경험할 시간의 질을 온전히 한 명의 사서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처럼 행사를 기획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서관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각자 다른 기대감으로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 사람들이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기 있는 분들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얻어 가실 수 있길 바라는 소망을 품게 된다. 전문 강사가 진행하는 보통의 문화 프로그램이라면, 여기까지의 마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강사인 것은 다르다. 손발이 저리고 식은땀이 난다. 반짝거리는 눈빛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내게 거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종종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를 위해 이겨내야만 한다. 그러니까, ‘이용자를 위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어설픈 강사를 잘 따라와주고, 큰 호응으로 보답해준 '배남열사'의 꼬마 참여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arong@gangna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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